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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엔 에메트셀크 if 휘틀로다이우스 × 클로토
……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결국 글 커미션을 넣어 오다.
《복슬복스(@BoxleBox) 님 커미션》
운명의 관측
@BoxleBox
에메트셀크는 이 별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고난과 역경이라는 단어는 존재했으나 잘 와닿지 않던 때. 모두가 이 별을 더욱 좋은 곳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며, 내일을 꿈꾸고 웃으며 살아가던 시기. 아모로트는 찬란했고 엘피스는 해가 지지 않았으며, 그에게 주어진 업무란 창조물 관리국 국장으로써, 그리고 누군가의 친우들로써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낙이던 때.
─휘틀로다이우스!
누군가 저를 분명 그리 불렀다. 익숙한 낯을 하고서, 그 얼굴로 웃으면서. 검푸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붉은 가면 위에 새겨진 문양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했다. 웃는 얼굴이 한껏 누그러지며 익숙한 이름을 부른다. 클로토. 긴 세월이 지나 모든 것이 풍화되어 사라지던 가운데에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그 이름.
그건 모두 찰나의 순간이다.
에메트셀크─휘틀로다이우스는 고요한 폐허 속에 앉아 어둠 속에서 제 손을 내려다본다. 익숙한 소울 크리스탈과 함께, 손끝에 매여진 붉은 실은 더 이상 제 곁에 남아있지 않는 클로토를 대신해 어느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망막 위 붉은 형태로 아로새겨진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아모로트에 있었는데 오늘의 너는 왜 실만 남겨둔 채 돌아오지 않는 걸까. 설마, 너도 세계의 분단을 피하지 못한 걸까? 그래서 이런 형태로밖에 남지 않아서……. 불안의 형체는 마음속에서 종말의 야수처럼 더욱 몸집을 부풀려만 가고, 최악을 가정하던 이성은 금방 빠르게 희망을 더듬어 빈자리를 채워나간다. 어쩌면 합리화에 가까운 말들. 진실과는 가장 먼 곳에 있는 가정.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어 중얼거린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네 혼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데, 그런 혼을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그렇지? 외면한 방향에는 종말 전의 아이테리스만큼이나 달콤한 착각이 놓여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에서 그럴싸한 기억들을 그러모아 만든 것들. 넌 그저 이 거대한 종말을 피하기 위해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던 거야. 그렇기에 실의 끝을 찾아 한없이 걸어도 너를 만날 수 없는 거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 대한 부정과 왜곡된 감각. 그래,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있잖아, 클로토.”
손안에서 둥근 소울 크리스탈을 굴리다 느릿하게 입을 연다. 반대쪽 손을 들어 붉은 실이 매인 손가락 위를 덮은 채 소울 크리스탈 너머로 마력을 살짝 흘려 넣으면, 클로토를 닮은 환영체가 화산의 분화를 막기 위해 달려가는 풍경이 보인다. 아, 저 때. 분명 그때 자신은 엘리디부스의 염려를 받고 그를 따라 화산으로 향했었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즐거운 추억들이었다. 그와 자신이 얼굴에 화산재를 잔뜩 묻히고 어린애처럼 웃으며 그 지역의 명물이라던 포도를 한 알씩 입에 밀어 넣어주던 때. 뒤늦게 쫓아온 하데스가 그 꼴은 도대체 뭐냐며 길길이 화를 내던 때가.
“라하브레아와 엘리디부스와 이야기해봤는데 말이야.”
추억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현실에 대한 부정을 낳는다. 그래, 너는 이번에도 그렇게 화산 대신 또 다른 곳으로 여정을 떠난 거겠지. 어쩌면 우리처럼 망가진 세계를 되돌릴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몰라. 다시 만날 때는 전처럼 웃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조각난 세계를 합쳐서, 동포들을 되돌리자고 했었거든.”
“그러면, 여행 중인 너와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알잖아, 나는 누구보다 에테르를 잘 보는걸. 그러니까 어디서든 너를 만나면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어. 너도 사람들의 에테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잖아? 그런 질문을 건네더라도 아젬의 환영체는 대답하지 않는다. 허공을 떠돌며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혼잣말. 문득 아젬의 환영체가 휘틀로다이우스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감각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대답을 할 것처럼 서서히 벌어지는 입. 그러나 닿지 않는 목소리.
사람은 떠나면, 목소리가 가장 먼저 잊힌다고 했던가?
“……이런.”
난처하다는 웃음소리. 미미하게 찡그려진 미간. 휘틀로다이우스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는다. 손안에서 힘없이 아젬의 소울 크리스탈이 굴러 바닥으로 떨어진다. 깨지지 않는 파편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마른 세수를 하듯 얼굴을 감싸 쥐면 손 틈새로 한숨이 새어나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향해야 할 곳도. 그러니까 클로토, 언제쯤 다시 만나줄 거야? 나는, 벌써부터…….
……네 목소리가 기억나질 않아.
*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초 세계에서 ‘빛의 전사’라고 불리는 이에게서, 아주 익숙한 에테르의 빛깔을 발견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홍실이 연결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기억 속에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검푸른 머리카락. 분명, 닮긴 했었다. 혼도, 그 모습도. 먼 곳에서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는 것을 제외고서.
아젬이 이 땅에 더 이상 없다는 건, 열네 갈래로 세계와 함께 조각났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견한 그 사람의 파편이란 희망인 걸까, 절망인 걸까. 휘틀로다이우스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럼에도 여전히 빛바래지 않은 색이 그곳에 있었다. 따뜻하면서도 밝은 빛. 불변하지 않는 운명의 색채.
다만 일만 이천의 시간 동안 휘틀로다이우스가 깨달은 게 있다면 열네 갈래로 갈라진 인간들은 지나치게 나약하며,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점이었다. 저들끼리 서로를 미워하고, 경쟁하며, 해치고 불행해한다. 스스로 행복해질 길을 모색하면서도 고난에 무너지고 너무나도 쉽게 죽어버린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젬의 혼은? 그들과, 뭔가 다를까. 아니면 불완전한 흔적 역시도 여느 인간들처럼 쉽게 무너져버릴까.
“안녕. 네가 ‘어둠의 전사’지?”
그렇기에 그건 어쩌면 자신도 채 의식하지 못한 본능적인 행동. 혹은, 어떤 그리움에 기반한… 아주 사소한 소망. 그에게는 ‘클로토’로써 자신과 함께한 기억도 없고, 아모로트와 종말에 관한 기억도 깡그리 잊어버렸을 터인데. 신생한 존재에게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찾아내려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행동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가면과 로브를 감추고 평범한 사람임을 가장하며 에오르제아의 영웅에게 한 발자국 다가선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던 얼굴이 돌아가고, 웃는 낯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란 명백히, 모르는 타인을 보는 눈. 이제 와서 그런 표정으로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기엔 그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살았으므로.
“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혹시 괜찮다면, 우릴 도와줄 수 있을까?”
천진난만하면서도 곤란하다는 음성은 절반의 거짓과 절반의 진실을 술술 늘어놓는다. ‘영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자신은 동족을 구하고 싶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며, 1세계에 남아있는 죄식자를 처단해달라는 이야기들. 영웅이 이 세계의 빛을 모두 삼킨 채 버티지 못하면 괴물이 되어 세계를 무너뜨리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동족’을 구하는 방법이 세계의 통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진실들을 숨겨놓은 채 반쪽자리 사실만을 내뱉는 일말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다. 영웅──아니지, 그 영혼의 주인 되는 ‘클로토’라는 존재를 잘 알았던 까닭이다. 너는 이런 부탁에는 쉽게 거절하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도 돕겠노라 말하겠지.
그런 휘틀로다이우스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증명하듯, 이를 알 리가 없는 ‘아트로포스 모이라’가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응답하듯 입 끝에 걸리는 그 미소다. 다가올 미래나 파멸도, 심지어는 과거조차도 알지 못한 채 웃는 이의 얼굴. 그것을 보고 있자면 일순간 입꼬리가 떨리며 굳었으나, 이를 감추듯 제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와아, 고마워!’ 따위의 말과 함께 자연스레 동행하듯 걸음을 옮겨놓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문득 나란히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길 끝에서 너는 온전히 한 명의 존재로 있게 될까, 아니면 이지를 잃은 세계의 종말을 가져다주는 짐승이 될까.
그럼에도 네가 그 빛을 감당해낸다면, 어느 정도는… 기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
“──어때? 여기까지가 우리의 이야기야.”
“여전히 네 기억에는 없는 이야기겠지?”
“……이런, 너무 그런 표정으로는 보진 마. 나도 안타까웠거든. 네가… 그렇게 변하는 미래가, 말이야.”
종말의 아모로트, 그 끄트머리. 메가테리온을 쓰러뜨린 일행의 앞에 가로막듯 모습을 드러낸 건 휘틀로다이우스였다. 더 이상 빛의 에테르를 버티지 못한 아트로포스의 몸이 기울어 흰 점액질을 핏덩이처럼 뱉어내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쓰러지려는 몸을 붙들고 있으면 충격적인 시야에는 익숙한 이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 당신은 도와달라고…….
“응, 그랬었지.”
“네 영혼은……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았거든. 정말 눈부시게 빛이 나지. 그래서 그 아이만큼 빛날 수 있을지 궁금했어. 결과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만.”
“키타나 신굴에서, 그 벽화를 봤잖아? 동포들을 되돌리는 건, 세계를 통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거 말이야.”
아트로포스 모이라는 클로토가 아니다. 그 사실만큼은 자명해졌으므로 휘틀로다이우스에게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 세계를 원초 세계에 통합시키고 과거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만이 과거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 그러니 틈을 내줄 필요도, 연민할 필요도 없다고. 이르게 눈을 감기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삶이라는 가시밭길 속에서 겪을 고통을 줄이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너희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 같네.”
어째서 발버둥 치는가. 이 세계의 멸망이란 지고지순한 순리인데. 어째서 너희는 계속해서 더 살아보려고 하는 걸까? 어느덧 새벽의 혈맹이라는 이들이 쓰러진 이를 감싸며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것을 본다. 우리의 발버둥은 전부 한낱 과거의 편린으로 흩어져 사라졌는데, 너희의 발버둥만 성공한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종말의 풍경을 봤음에도 너희는, 그런데도 ‘너’는…….
“그렇구나. 지키고 싶은 게 있다는 표정이야. 정말… 익숙한 사람이 떠올라서 불유쾌할 지경이지만.”
“싸우고 싶다면, 나도 물러날 수는 없으니까.”
“나는 혼을 보는 자로서 에메트셀크의 자리에 오른 자.”
천천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 가면 대신 붉은 문양이 얼굴 위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에메트셀크의 자리에 오른 존재라는 증거. 붉은 곡선이 마치 가면처럼 이루어 표정을 감추지만, 대조적이게 웃는 낯으로 자신에게 대적하는 이들을 본다. 알고 있다. 자신은 하데스처럼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지도 못하고, 베네스처럼 무기를 사용하는 일에 능통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고대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던 변신조차도 과거에 하지 못했으니 싸움에 불리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신’과 같은 존재일 때의 이야기.
‘보인다니까. 흐트러진 약점이.’
이채를 띠며 빛나는 보랏빛 시선이 낱낱이 에테르의 연약한 부분을 감지한다. 정말로,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저들이 제게 이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그러니 마지막만큼은 친절하게 굴어도 되겠지. 여태 에메트셀크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말하지 않았던 진짜 이름을 내뱉는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에서다. 발밑에서 어둠이 번져나가고, 발을 디딘 채 서 있던 풍경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어느 무대처럼, 멸망한 별의 풍경 대신 완전히 자리 잡은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내뱉는 것은 이름.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인사.
“……진짜 이름은, ‘휘틀로다이우스’라고 해.”
“그 아이와 동포를 위해, 너희에게서 세계를 빼앗을 존재지.”
승자의 역사가 이어지면 패배한 쪽은 반역자로 기록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이 이야기에서 불완전한 이들을 반역자로 정의하리라.
- END. 공백 미포함 4,396자.
Written by 복슬복스(@ Boxle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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