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월의 종언(v6.0)까지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감상에 주의해 주세요.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하늘을 지배한 불꽃이 땅을 향해 쏟아진다. 

  별의 이치가 흐트러지고, 흐트러진 질서 속에서 재앙이 피어난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던 문명은 슬픔과 비탄에 젖어 끝을 맞이하고, 늘 함께하던 마법은 공포에 짓눌려 망가져만 간다.

  다가오는 종말 속에서, 위대한 14인 위원회는 대처방안을 찾아 헤맨다. 별의 이치가 흐트러졌다면, 새로운 이치를 세워야만 한다. 이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야만 바로 세울 수 있으니. 별 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는 불가능해. 대가를 치러 그 시일을 당장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양의 대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절반을 제물 삼아, 별의 이치를, ‘조디아크’를 창조하자. 그리하여 별의 안정을──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회의를 박차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최선의 방안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별은 지금의 위원회가 긍정하는 방식만이 최선이라 외친다. 나만의 답을, 동포를 희생하지 않는 최선의 답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 세상이 알려온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반대한 끝을, 어긋날 시작을 마주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불타는 아모로트에 돌아왔다.

  “──돌아왔구나, 아젬.”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그의 표정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저 태를 보아라. 누가 보아도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자의 얼굴이 아닌가. 언젠가의 약속이 뇌리를 스쳐감에 따라 말이 사고를 거치지 않고 내뱉어진다.

  “이제 와서 날 떠날 셈이야?”

  저가 내뱉어놓고 되레 놀라는 꼴이라니. 실없는 말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다. 그럼에도 너를 말리고픈 심정이다. 떨려오는 호흡을 가다듬고 너를 바라본다.

  “정말로 가는 거야? 네가 아니어도 괜찮잖아……!”
  “와아, 너답지 않은 소리를 하네. 하지만 아젬, 너도 알잖아. 이미 역할은 나뉘었어.”

  소환할 자와 제물로써 자신을 바칠 자로.

  “게다가 너는 다른 방안을 찾기 위해 대회의를 박차고 나가 모습을 감췄던 거잖아? 그런 네가 아모로트에 돌아왔으니, 이것이 최선이라는 소리겠지. 난 괜찮아.”

  그 말이 맞다. 분명 나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아젬의 자리를 박차고 지금의 방안을 부정하면서 타지를 떠돌았다. 그런 내가 결국 아모로트의 거리에서 발견되었으니,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뻔한 이야기지. 내가 부정했던 이 방안만이 최선이라고.


  입술을 짓씹는다. 날카로운 이가 여린 살을 잘근 씹을 때마다 아릿함이 치고 올라온다. 하고픈 말이 많다. 그럼에도 네가 남아있기를 바란다든지, 차라리 어딘가에 숨어서 함께 살아가자든지. 하지만 모두 네 앞에서는 감히 꺼낼 수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저 내뱉을 수 있는 것은 나를 돌아봐 달라는 간절한 호소 뿐.

  “그럼, 나는? 널 잃고 남겨질 나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너라면,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응. 그렇잖아? 내가 아는 아젬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사람인 걸. 나는 그저 지나간 인연으로 남겨두고, 너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당당히 내가 자신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믿음에는 한 치의 틈도 없다. 말이야 쉽지. 나는 단언하건데,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너를 귀애하여 왔는데, 이제 와서 그 긴 시간들이 잊혀지겠나. 과거의 행복을 곱씹고 곱씹다, 결국 침몰해버리고 말 테지. 안 봐도 뻔해.

  “내가, 널 잊을 수 있을 거라고?”

  분에 차 내뱉은 물음에 곤란하다는 듯 웃는 네가 보인다. 너도 분명 알고 있어. 그러니 이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겠지. 그럼에도 너에게 실망하였기에, 성큼 걸어가 네 멱살을 잡아 끌어내렸다. 큰 저항 없이 끌려온 너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본다.

  분노와 슬픔에 눈가가 뜨거워진다. 가슴에 멍울이 진다. 저도 인지하지 못한 새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해, 휘틀로다이우스. 내가 널 잊는 미래 따위는 없을 거야.”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너의 심상이 비추어진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묻어나는 체념과, 그럼에도 자신을 잊지 못한다 말해주니 생겨나는 기쁨이 상반되어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 언젠가의 미래에서 다시 한 번 말해줄게.” 

  그래. 이런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조금은 더 잔잔한 이별을 맞이하고 싶어. 그리 생각하며 망가진 마법 속에서 친숙한 실을 끌어온다. 세상에서 처음 눈을 뜬 날부터 보였던 나만의 세상. 세상의 모든 이의 운명을 나타내는 실. 그 중에서 나와 너의 실을 들여다본다. 우리의 애정을 보여주는 두꺼운 홍실은, 그 끝이 검게 타올라 있다. 그것이 잿더미가 된다면 비로소 우리의 끝, 인연의 마지막이 다가오겠지.

  그러니, 기꺼이 어머니의 족쇄를 풀어헤치리라. 세계의 운명을 손대는 것은 별을 해칠 수 있다며 나에게 걸어진 족쇄. 그리 필요하지도 않고, 어머니의 의견에 골백번은 동감하기에 내버려 두었던 나의 대마법. 짙은 에테르를 운용하자 나와 그의 실이 실체를 보인다. 그에 무언가를 예감했는지, 다급히 나의 눈을 가리려 하는 너를 본다.

  “잠깐, 클로토──,”
  “알잖아, 휘틀로다이우스. 너의 연인은 소유욕이 심하다는 걸.”
  “안 돼……!”

  여전히 멱살이 잡힌 채로 어정쩡히 나를 막으려 드는 너에게 입맞춘다. 네가 고장나는 그 잠깐의 틈,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에테르를 엮어간다. 

  공포로 흔들리는 에테르가 마법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대가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친다. 그렇다면 평범한 시야가 대가로서 적합한지 저울질 해본다. ……이것으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나만이 부여받은 운명안(運命眼)을 대신 저울 위에 올려본다. 아주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평범한 시야를 저울에 함께 올리면 만족이 될 정도. 

  억센 손이 나를 떼어내고는 부드럽게 역으로 잡아온다. 마주 본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리운 얼굴.

  “클로토, 아젬. 제발…….”
  “──이미 늦었어.”

  실을 빚어내기만 하던 이가, 기존의 운명에 새로운 운명을 부여한다. 나의 모든 시야를 대가로 올린 탓에, 앞이 점차 흐려진다. 종래에는 오직 암흑만이 남는다. 태어날부터 함께했던 운명의 실타래마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나의 모든 시야를 잃었지만, 언제가 되었든 너와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세상쯤이야, 얼마든지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으니.

  그리하여 운명이 완성된다. 온통 암흑 뿐인 세상에서 푸른 글씨만이 떠올라 그것을 고한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언젠가의 미래에서 ‘나’와 다시 마주하리라.

  “클로토, 너⋯⋯.”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너 역시 운명의 통보를, 예언을 보았다고. 

  “말했잖아. 언젠가의 미래에서, 사랑한다 다시 말해주겠다고.”

  보이지 않으나, 우리의 실이 미래까지 이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언제가 되었건, 다시 너를 마주할 수 있다. 이제는 만족하고 너를 떠나보낼 수 있어. 종말이 진정이 된 후에도 너를 잊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아주 침몰되지는 않을 거야. 

  네게 붙잡힌 손을 빼어 천천히 너의 얼굴로 향한다. 아직도 허리를 굽히고 나와 시야를 마주하고 있구나. 멀지 않아 네 뺨에 손길이 닿는다. 내 시야가 사라졌다는 것이 ‘보였는지’, 너는 거부하지 않고 내 손에 제 손을 마주 겹쳐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클로토, 이건…….”
  “휘틀로.”

  이미 벌어진 일, 이견은 받지 않는다는 뜻을 함축하여 그를 나직하게 부른다. 말이 더 이어지지 않는다. 원체 진실 같은 것을 잘 ‘보는’ 녀석이니 제 뜻을 알아차렸겠지. 그런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가라앉은 네 목소리가 들려온다.

  “……응. 그날만을 기대하고 있을게.”

  씁쓸히 답하는 네 심정이 느껴진다. 이런 것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보내주지 않았을 나를 아는 너이기에. 

  울듯이 미소 지으며, 천천히 그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마주 닿았던 손은 점차 멀어진다. 뒤를 돌아서고는 네게 말했다.

  “어서 가.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잖아.”

  머뭇거리기라도 하는 걸까. 기척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마에 몰캉한 것이 맞닿아온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서야 멀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조그맣게 닿아오는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꼭, 다시 보자. 내 사랑.”

  마지막까지 바보 같은 사람. 여태껏 참아왔던 설움이 방울져 떨어진다. 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얼간이처럼 슬픔과 비탄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야 만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이후의 세상을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에게 공포가 되어 다가온다.

──끝내 눈물과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 END. 공백 미포함 3,17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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