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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st 4장 스크립트 속 쟈미르델.
아르델의 작중행보 같은 느낌으로 작성했으며,
기존 스크립트를 알지 못한다면 감상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001.
학교가 떠들썩하다. 거울의 방으로 향하는 행렬이 길게 늘어진다. 그러고보니 오늘부터 방학이었던가.
“──라고는 해도, 저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네요.”
이번 학기의 스카라비아는 기말고사에서도 매지프트 대회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해버렸으니까. 그 탓인지, 최근 이래저래 성격이 휙휙 바뀌는 기숙사장이 모든 사생의 귀가를 금지했다. 성적이 괜찮게 나온 저 역시, 예외는 아니고.
불만은 없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누구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쪽으로 불똥이 튀고 말 텐데. 그런 귀찮은 일은 절대 사양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이번에는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연락을 해오셨으니, 걱정할 건 없고.
그나저나, 요즘 확실히 카림의 행보가 이상했죠. 마치 다중인격이라도 된 것처럼. 쟈밀은 부담감이라던가, 그런 말로 대충 감추는 것 같다만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요. ……. 아닌가? 스카라비아의 사생들은 모두 그 이야기에 홀딱 넘어간 것을 떠올리다 어깨를 으쓱인다. 아닐지도. 아무리 이 정도로도 충분히 넘어가는 것 같다지만, 역시 반항을 하려면 조금 더 치밀하게 해야죠, 쟈밀. ……뭐, 그건 네 나름의 마지노선인가.
아무렴 뭐 어때요. 중요한 건, 드디어 네가 반항을 시작했다는 건데.
우후후, 부디 성공해주세요.
──그래야, 네가 내 손에 들어올 테니까.
*
002.
“뭐? 도, 독 감별?!”
“카림은 열사의 나라에서도 몇 안되는 대부호의 후계자야. 목숨을 노려지는 일도 적지 않으니까, 독 감별은 필수지.”
계속해서 소란스러워지는 담화실에, 보고 있던 서적을 내려놓는다. 손님이 와서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식사를 하면서 떠드는 것도 충분히 참았다.
“하아.”
조용한 한숨 소리는 시끄러운 주변에 금방 묻힌다. 그럼에도 몰리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면 마주하는 익숙한 눈꼬리.
“별일은 아닙니다. 하던 얘기 마저 하세요.”
“앗, 아르델! 오늘도 책이야? 글쎄, 들어봐, 들어봐! 쟈밀은 늘 과장되게 말한다니까? 식사에 독을 넣는다니, 4년 전에 2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진 것을 마지막으로 요새는 좀 뜸하다구.”
“그 4년 동안은 제대로 독 감별을 했으니까 무사했을 뿐이야. 네가 먹기 전에 독이 들어간 요리는 처리하고 있어.”
“어이, 그러니까 아까 나님에게 이것저것 먹게 한 건, 독 감별을 위한 거였단 거야?”
“……시끄러워요, 전부.”
또다시 한숨을 내뱉는다.
“쟈밀의 말에는 틀린 게 없습니다, 카림. 식사에 독을 넣는 정도는 흔하니까, 적당히 위기감을 가지라고 제가 몇 번이고 말했죠?”
“아하하!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쟈밀이 만든 거라면 안심인걸. 쟈밀은 절대 식사에 독을 넣지 않아.”
“……미치겠네.”
쟈밀을 바라보니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는 카림에게 맞춰주기만 할 뿐이었다. 아아, 역시 저런 꼴은 싫네요. 오늘도 내 것이 될 생각은 없냐고 제안을 할까 싶지만…… 지금은 그의 반항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니까. 조금 정도는 더 참아볼까요.
입을 비죽이고는, 이쪽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덮어 둔 서적을 들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가게?”
“네. 계속 있어봤자 전 연회에 방해만 될 테니까요. 솔직히, 이 책을 어서 완독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들고 있는 서적을 흔들어 보였다. 그에 따라 내가 들고 있는 책에 시선이 가는가 싶더니, 이름 모를 학생-감독생이라고 했던가-이 표지의 제목을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군 의무지휘체계 변화와 그에 관련된 역사 연구……?”
“으겍, 그런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거냐구?!”
“글쎄요. 어렵다기 보다는 흥미로운 내용 뿐인지라.”
“히익, 이해할 수 없다구!”
“아하하, 그럴 수 있지! 스카라비아의 다른 학생들도 아르델이 읽는 책은 이해 못하는 쪽이 더 많은걸.”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저에겐 적당한 수준의 책이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감자들이 꽤 있는 편이라서. 그 세상에 익숙해지고 나니, 기대치를 아주 낮추고 나서야 그럭저럭 쓸만한 두뇌를 발견했달까. 뭐, 그걸 낮추기 전부터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었지만.
눈을 굴려 쿡쿡, 가볍게 웃는 쟈밀을 지켜봤다. 아. 역시 가지고 싶어. 또다시 불쑥 치고 올라온 욕망을 살살 달래어 가라앉히고는 이번에야말로 가겠다는 뜻을 담아 손을 흔들었다.
“아무튼, 이만 가볼게요.”
“응응, 나중에 보자!”
“네. 그럼, 손님들께서는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
003.
방에 돌아와서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내렸다. 《군 의무지휘체계 변화와 그에 관련된 역사 연구》는 가시나무 대륙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예시로 주로 다루었다. 최근 전쟁이라 할 것은 그것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다 읽은 책을 덮고,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현재의 군 의무지휘체계는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허나, 이건 400년 전의 전쟁이 기반이므로 현대에는 맞지 않아. 최근의 평화로웠던 시대를 생각하면, 해당 체계는 아마 무너지거나 해이해졌을 것이다. 열사의 나라의 군부는 어머니가 쥐고 있으니 아주 무너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갑작스러운 전쟁에 대처하기에는 효율적이지 않을 확률이 크다. 어머니께 받은 지식을 뒤적이며,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맑은 노크 소리가 생각을 끊어낸다.
“네.”
“아르델 선배, 식사 시간 전에 기숙사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금방 나가죠.”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돈했다. 거울을 보고, 여전히 오라비의 얼굴인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수호의 빛 (守りの光) 】은 무너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발걸음 옮겨 담화실로 향한다. 이번에 하려는 연설은 무엇이려나.
담화실에 도착해서 기숙사장이 공지하는 이야기는 정말 가관이었다. 내일부터는 매일 5시간 공부와, 4시간의 실기 훈련을 전원 의무로 한다고……. 게다가 식사 후 방어훈련이라니. 아핫, 아하하하하하! 아아, 어떡하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어쩜 이렇게 뻔한 스토리를 짰을까, 내 사랑은. 이건 완전 폭정을 더 버티지 못해 들고 일어나는, 클리셰적 시나리오잖아요.
참지 않고 크게 웃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이런 상황에서 웃고 만다면 분명 싸늘한 눈초리를 받고 말 테지. 최대한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아낸다. 그 반동으로 어깨가 조금 떨렸나. 누군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이면 그 ‘아르델 리시’가 기숙사장의 폭정에 울었다는 소문이 퍼지려나. 아, 정말 기대되네요. 이 이야기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
004.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쟈밀.”
그의 방문을 두어 번 두드린다. 대답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금 노크를 해본다.
“쟈밀.”
여전히 답은 없었다.
“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뭐, 좋아.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렇다면 그냥 들어만 줘요. 네가 감독생과 예의 없는 몬스터를 이 계획에 끌어들인 이유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아주 강력한 변수가 될 거예요. 그걸 잘 통제할 자신이 있나요?”
“…….”
“그래. 이것 또한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고. 사실 본론은 이쪽. 내가 늘 말했죠? 난 네가 가지고 싶어. 이 일이 끝난다면,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고요. 내 제안은 아직도 유효하니까.”
아직까지도 방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인기척이, 네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걸 의미해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미소 지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잘 자, 내 사랑.”
*
005.
“그럼, 전 가볼게요. 잘 자, 내 사랑.”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어투.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저 문 너머의 무미건조한 표정. 그런 얼굴로 ‘내 사랑’이라 말하다니.
“……너도 똑같잖아.”
모든 것을 지나치게 긍정해서 낙관적인 카림이랑 다를 게 뭐냔 말이야. 너 역시 나를 비참하게 해.
첫 만남에서부터 다짜고짜 자신의 것이 되라며 들러붙은 여자아이. 대대로 왕실 책략가를 배출해 낸 가문이라 했었지. 또 성가신 귀족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너는 계속해서 나에게 자신의 사람이 되라며 친근하게 굴었지. 너는 그렇게 행동할지 몰라도, 그 부모는 분명히 나에게 억압을 가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난 리시 가의 가주는 무척 이상한 사람이었지.
‘네가 쟈밀이더냐? 흐음……. 뭐, 그래. 합격이다. 내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들어주도록 해. 괜히 이것저것 들어주면 네가 힘들 게다.’
‘……그, 저.’
‘음? 아아, 네가 종자 가문이라 그것이 걸린 게냐? 괜찮다. 그까짓 게 뭐라고. 막 대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것으로 상처받을 아이는 아니니.’
높은 신분인 제 아이에게 낮은 신분인 내가 멋대로 굴어도 괜찮다는 듯 말하는 것이 신기했다. 동시에 리시 가문의 종자가 된다면, 적어도 카림과 함께 있을 때처럼 그의 뒤에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녀석의 제안을 수락하지 못한 건, 가족 때문이었다. 조상 대대로 아짐 가문의 종자였던 바이퍼 가문은, 결코 이런 나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델은 특출나게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탓에, 모든 것에 금방 싫증을 내버려. 그런 아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네게 흥미를 가졌다는 것은 네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 나의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그 녀석과 처음 마주하기도 전부터, 나는 늘 카림에게 승리를 양보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보는 나는 언제나 카림에게 지는 아이였을 텐데.
그럼에도 불고하고, 특출난 나를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는 건 분명한 기쁨이었다. 그 녀석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질 때마다 짜릿했다. 봐,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녀석이 있어. 늘 나만이 누군가를 알 필요는 없었던 거야.
하지만 그 녀석도 결국은 귀족이라, 그 끝에는 늘 신분의 차이에 억압당하는 내가 있었다.
“……그래도 넌 나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이제는 자유롭고 싶을 뿐이니까.
*
006.
그리고 다음 날 밤, 곤히 자고 있었는데 정원으로 끌려 나왔다.
“하?”
의문에 짜증이 가득 실린다. 눈치를 보던 후배 하나가 다가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밤중에 스카라비아에 무능한 기숙사장은 필요 없다고 똘똘 뭉치다가 걸려서 전원 재집합이라는 거죠?”
“그, 그게,”
“아닙니까?”
“아, 아뇨! 맞습니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짚었다. 당장 이 원흉을 잡아다 족치고 싶었다. 평소보다 예민하고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이, 하필 그 시즌인가. 완전 망했음을 직감해버렸다.
“이 오밤중에 스카라비아에 무능한 기숙사장은 필요 없다고 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생겼네.”
“지금 뭐라 했지?”
“아, 실수. 자다 끌려 나와서 이래저래 정신이 온전치 못합니다. 양해를.”
멋대로 입 밖으로 뛰쳐나간 발언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대체적으로 쟤 뭐 잘못 먹었냐든가, 이상하다든가 하든 이야기였다. 저도 지금 당황스러우니까, 너희들은 조용히 해주면 참 좋을텐데요.
“저는 부기숙사장도 기숙사장도 아니라서 그 어떤 권한도 없죠. 인지하고 있습니다. 당장 군에서도 이런 식으로 반란이 일어난다면 그 즉시 전원 정신교육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군이 아닌 학교. 그것도 마법사의 학교입니다. 군부대 육성 사관학교 같은 게 아니란 말이죠. 이에 대한 처벌은 해당 인물만 하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짜증 나. 거슬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정답을 말해보세요.』”
언령을 읊는다.
“『당신은 어떤 탐나는 빛의 보석을 지니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습니까?』”
스펠이 완성된다.
“──【문지기의 지혜 (門衛の叡智) 】.”
이제 내가 인정하는 것 외의 대답을 한다면, 너의 특별한 마법은 영원히 보석이 될 지어니.
“…….”
“자, 카림. 다시 한 번 힌트까지 친절하게 드리죠. 난 기숙사장의 자리를 찬탈할 생각 따위 없습니다. 그저 난, 지금, 당장.”
단어 하나하나를 힘주어 끊어 말하다 힘을 풀고는 삐딱하게 웃어보인다.
“들어가 자고 싶을 뿐이에요. 이해가 어렵나요?”
주변이 고요해진다. 다른 학생들도 본능적으로 느꼈겠지. 여기서 나를 말려봤자 손해 밖에 없을 것이란 것을. 그리고 실제로도 그리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잠시간의 침묵 후에 기숙사장의 판결이 떨어졌다. 아마도, 쟈밀의 입김이 들어갔을.
“……담화실에서 감히 반동분자가 된 인원만 남고, 전원 해산한다.”
“완벽하네요. 정답입니다.”
선언과 동시에 유니크 마법의 효과가 종료된다. 몸을 돌려 곧장 방으로 직행했다.
모두가 이용하는 담화실에서 그딴 이야기를 지껄여서 이 밤중에 나를 깨우게 만든 녀석들은 얼차려를 받든지 말든지.
*
007.
고작 며칠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일어날 수 있는 걸까. 낡은 기숙사의 두 사람과 함께 들어오는 옥타비넬의 세 사람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진다. 변수가 너무 많아졌는데요, 쟈밀. 이거 성공할 수 있는 건가요?
“하아…… 혹한 속에, 올해도 세 명 뿐인 홀리데이인가요……. 뭐, 어쩔 수 없지만…….”
“열심히 마법 양탄자를 붙잡았는데 말이죠…….”
“모스트로 라운지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지…….”
“하아~~~~~~~……시무룩.”
──라고는 해도, 역시 쟈밀이 일방적으로 휘말리는 모습이 재밌달지. 지금까지 기다린 것만으로도 몇 년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언젠가 다음 기회가 오겠죠. 우선은 즐길까요.
기다리라며 소리치는 카림의 목소리와 그를 뒤이어 크게 내뱉어지는 쟈밀의 한숨 소리에 쿡쿡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대한 시선을 덜 끌어보려는 속셈이었지만, 이어지는 대화에 완전히 함락 당해버렸다. 그래요. 기어코 깔깔 웃어버린 겁니다.
“아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웃은 탓일까,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검지로 대강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아, 세상에. 이렇게까지 쟈밀이 밀리는 건 오랜만에 봐요.”
“네?”
“칭찬입니다, 칭찬. 간만에 기분이 최고치를 찍고 정말 좋네요.”
“웃는 얼굴 보기 힘들다던 아르델 씨에게서 이만큼이나 큰 웃음을 얻어내다니, 영광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요. 아무쪼록, 내 쟈밀을 잘 부탁하도록 할까요.”
그리 말하며 옅게 미소 지으니, 곧 태클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나는 카림의 사람이라고.”
*
008.
복장을 정돈하고, 거울을 본다. 모랫빛의 금발과 선명하지만 동시에 어두운 금안을 지닌 청년이 거울에 비친다.
“응, 오늘도 세이프.”
커다란 마력에 휘말리는 게 아니라면, 풀릴 위험은 없으니 아직까진 안심이지만……. 역시 쟈밀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가는 게 보여서 그의 블롯이 걱정된달지. 최근 잇따라 일어난 오버블롯 사건에 내심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의 스케줄이 끝나면 찾아가 봐야 하려나.”
귀걸이와 뱅글, 마지막으로 서클렛을 착용하고는 다시 거울을 확인한다. 갓입학했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설프게 해버린 탓에 쟈밀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 이후로 특훈을 받고 1년 정도 홀로 하다보니 확실히 이제는 멀끔히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적당히 봐줄 수 있는 정도의 꼴이 되자, 방을 나서 담화실로 향한다.
웅성웅성, 오늘은 어째서인지 담화실이 조금 소란스럽다. 무슨 일인가, 하여 확인하니 웬 옥타비넬의 멀대 하나가 조리실에 있,
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내가 이 상황을 확인함과 동시에 저쪽에서도 나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들어 왔다.
“칭아나고 군, 좋은 아침~”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째서 쟈밀이 아니라 당신이 주방에 있는 거죠?”
“아즐이 말이지, 바다뱀 군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목젖까지 차오른 의문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지. 갑자기 태도가 변했다. 쟈밀의 휴식을 바라는 듯한 발언. ……설마, 전부 알아냈나? 와, 이거 정말 걸작인데요. 조금 위험할지도.
*
009.
이후로 종일 이어지는 것은, 옥타비넬의 주도하에 점차 개선되어가는 합숙 상황. 점점 카림에 대한 신뢰가 복구되고 있었다. 현 상황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쟈밀이 짜두었던 시나리오는 완전 폐기. 아니, 이미 거멓게 불타서 잿더미만이 남았을 것이다.
아무도 몰래 입술을 짓씹는다. 이대로라면, 성공은 둘째치더라도 최악의 시나리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야 하는데…….
*
010.
“미안하지만, 이 이상 너희를 스카라비아에 둘 수 없어. 바다 밑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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