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1

: 이갱
|2024. 1. 27. 13:37

  날이 따스한 언젠가, 어느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들어버린 순백의 미코테를 바라보며 살풋이 웃었다. 오늘, 같이 모험을 떠나는 게 무척 기대된다고 잠을 설쳤다더니. 결국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어버린 모양이다. 내 앞에서 이리도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척 귀여웠고, 또한 아주 사랑스러웠다. 그에 더해 배부른 만족감까지 차오른다. 당신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앞에서만이기를 감히 바라도 괜찮으려나.

   “⋯⋯아.”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감정을 알아차리기 무섭게, 잔잔히 미소 짓던 입꼬리가 단번에 굳었다. 이래서는 안 될 텐데. 우리는 단순히 서로 득을 보기 위한 비즈니스 관계.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언약식을 올렸고, 그에 마땅히 이 관계에는 사랑이란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게 이렇게나 스며든 것인지.

  모험가들 사이에서 비즈니스 언약이란 꽤 흔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내게 언약 초코보가 가지고 싶다며 비즈니스를 조건으로 언약을 제안한 건 그리 당혹스러울 것도 없었다. 우리는 제법 자주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당신이 내게 조잘대며 말을 걸어주었으니까. 

  게다가 가문에서 내게 짝을 붙이겠다며 이리저리 성가시게 굴었기에 그것들을 치우기에는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한미한 가문 주제에 모험가가 된 차남에게 대체 무얼 바라는지. 뭐어, 어쨌든. 어차피 내 옆에 누군가가 자리해야 한다면, 그게 당신이어도 괜찮을 거란 판단하에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후후, 통성명을 하자마자 멋대로 애칭을 부르기에 제법 성가셨었죠. 다짜고짜 ‘리베’라니. 그건 고대어로 사랑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 어쩐지 기분이 묘했단 말입니다. ‘리벨’이라고 불러 달라 정정해 주었음에도 꿋꿋하게 ‘리베’라 부르는 당신에 그냥 포기했던 기억도 있어요. 아무리 봐도 그 뜻을 모르는 듯했죠. 언젠가 그 뜻을 알려주려 할 때마다 어쩐지 계속 일이 생겨 말할 수 없어서 황당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리의 언약식 이후에는 비즈니스 관계지만, 일단은 언약한 사이이니 그대로 둬도 나쁘지 않을 거란 계산으로 내버려 뒀었고요.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은 무척 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나를 ‘리벨’이라 부르는데, 당신만이 나를 ‘사랑’이라고 불러주니까. 비록 당신은 여전히 그 뜻을 모르는 듯하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 괜찮아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서 ‘사랑’이라 불리다니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를 알려주지 않은 건 단순히 내 욕심이 되겠네요. 당신은 비즈니스 관계의 언약을 원했으니까. 이 뜻을 알려준다면 언젠가 내가 당신께 정정을 요청했던 것처럼 ‘리벨’이라 불리게 될까 무서워서 이제는 그 뜻을 알려주기도 겁납니다. 

  내가 이리 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당신 앞에만 서면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나의 무엇이 당신에게 잘못 보여 당신이 내게서 흥미를 잃을까 봐. 당신이 알면 분명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하겠죠. 그렇지만, 두려운걸요. 당신이 언제 나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같은 맥락으로 당신과 모험을 떠날 때에도 꽤 두렵네요. 나의 실수로 당신이 쓰러지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거예요. ⋯⋯하하, 역시 바보 같죠? 

  나는, 내가 언제 당신을 이렇게나 생각하게 되었는지 몰라요. 당신은 가랑비를 맞다 보면, 언제 옷이 젖어들었는지 알 수 있나요? 그리도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곧바로 알아챌 수 있나요. 그것과 같은 겁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언젠지 모르게 흠뻑 젖어버렸다는 사실 하나만은 똑똑히 기억하잖아요. 나도 그렇습니다. 내게 한 줌도 채 되지 않던 당신이란 존재 의미가, 잔뜩 물들고 젖어들어 얼마나 무거운지. 

  그래요. 이건 더 부정할 수도 없는, 아주 적확한 사랑이네요. 그러나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니 이 감정을 당신에게 표해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비즈니스였던 우리의 관계에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면 분명, 이 평화로운 한때도 금세 무너지고 말 테죠. 그런 건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건 괜찮아요. 그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을 보기만 해도 이리도 만족스러운데,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계에서 감히 가지게 된 사랑을, 나는 숨기려 합니다. 

  ⋯⋯그리 생각하며, 당신의 머리칼에 아주 살짝 손을 가져다 대었다. 머릿결을 따라 톡, 톡.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만지다, 그 끝자락에서 순백의 머리칼을 한 움큼 손에 담아, 당신이 잠에서 깨기 전에 그 머리칼에 짧게 키스했다. 머리카락에 하는 키스는 ‘당신을 사모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따스한 꿈나라에서 헤매는 당신은 알 수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몰래 내 마음을 당신에게 표현해 본다. 비즈니스 사이에서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품었으니, 나의 표현은 여기서 멈추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감히 소원한다. 내 감정을 오롯이 나 혼자만 감당할 수 있기를.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들키지 않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의 사랑이 부디 당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기를.

 

 


- END. 공미포 1,921자.

2022.11.28 작성.